취향 수집가 5인의 인터뷰
 
손에 잡히는 취향, 수집물에 관하여
경계 없는 취향.
저는 취향에도 한계를 두고 싶지 않아요.
그런 고민이 들 때도 있었어요.
'내가 너무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가?'
근데 저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해두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은 비워내며 앞으로 뭘 채워갈지 고민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서,
열어 두고 싶어요.
맞아요. 단단히 배우고 있어요.
작가님 중에 어린 시절 처음 구매한 장난감 영수증을 액자에 걸어 둔 분이 계세요.
자신의 취향을 존중하고 보듬어 주고 있으신 거죠.
평소에 이런 잔소리를 많이 듣거든요. '이런 걸 왜 모으냐, 버리지.'
그럴 때마다 저는 저 자신에게 잘했다고 말해주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나는 이런 취향을 가지고 있구나. 멋지다.
이 정도면 나 괜찮네.'라고 스스로 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 같아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내면을 마주하게 되었잖아요.
요즘 나오는 책의 주제들도 내면을 마주하는 내용이 많더라고요.
저희도 기록, 삶의 균형 등 나를 바라보는 주제가 많았고요.
이런 주제는 실제로 반응이 좋아서 ‘다들 이게 고민이었구나. 나만의 고민이 아니구나.’ 생각해요.
주말에 캠핑을 자주 다녀요.
저와 남편이 자연을 좋아해서 가기 시작한 건데, 지금은 아이들도 함께하게 되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가면 힘들죠. 덜 씻게 되고, 잠자리도 불편하니까요.
하지만 캠핑을 함으로써 집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고,
감사함을 깨닫게 되니 좋더라고요.
캠핑에서 놀고 돌아오면 '집이 최고다.' 그런 생각 들잖아요.
'왜 이리 벌레가 많아!'라는 불평에도, '걔네는 거기가 자기 자리야.'라고 말해줘요.
이런 경험이 아이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힘들어도 부지런히 다니게 돼요.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저희 집이 삼각형이에요.
첫째 지오는 이 삼각형 공간에서 자라서인지 오히려 물어봐요. '집이 다 네모예요?'
지오에게 집이 네모인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게 좋아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며 소비해온 틀에 갇혀 있지 않은 거죠.
아이를 낳고 취향이 바뀌진 않은 것 같아요.
다만 취향 중에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더 하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아이가 생기기 전부터 쇼핑하는 것과 캠핑을 좋아해 왔는데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쇼핑은 덜하게 되고 캠핑은 더 많이 가게 되는 거죠.
취향은 그대로지만, 우선순위가 달라졌어요.
물건도 그대로인 것 같아요. 다만 물건을 고를 때 아이를 위한 새로운 기준은 생겼어요.
'뾰족한 것을 사지 않는다.'
언젠가 ‘넌 뭐가 좋아?’라는 질문에 제가 대답을 못 하고 있더라고요.
원래 좋아하는 게 참 많던 사람이었는데..
유난히 올해 저 자신에 대해 질문할 기회가 많아져서 돌이켜보니,
편집장으로서는 직원들의 업무 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엄마로서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일도 육아도 타인 위주로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정작 저는 돌보지 못하고 있던 거죠.
그래서 요즘 저에 대해 하나하나 생각해보려 하고 있어요.
근데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없더라고요. 퇴근하면 육아 출근이잖아요. (웃음)

그래서 하루 중
저를 위한 시간을 따로 정해 두고,
이 시간 동안 인센스를 켜고 책을 읽거나 저에 대한 생각에 집중해요.

인센스 향이 기분을 편안하게 해줘서 좋더라고요. 원래 향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숲을 찾지 않아도 향만으로 릴렉싱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편지도 저를 돌보는 물건 중 하나예요.
'일하면서 좋았던 적이 언제였어?'라는 질문에 ‘편지 받을 때 좋더라.’고 대답한 적이 있어요.
저와 저희 직원들은 편지를 참 좋아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자주 쓰는 편이거든요.
얼마 전 직원이 편지로 이런 말을 건네 주었어요.
개성 강한 어라운드 사람들을 재단하지 않고 경계 없이 받아주었다고요.
이런
편지를 통해 저도 모르는 제 모습을 마주하게 돼요.
위안을 많이 얻고 있어요.
그간 너무 많은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해요.
앞으로는 그 중
진짜 내 취향이 뭔지 알아가고 싶어요.
필요에 의해, 혹은 남의 영향으로 만든 취향이 아닌
평생 가져갈 나의 취향으로 좁혀 나갈 거예요.
네 맞아요. 제가 아무리 게으르고 부족해도, 빈 노트는 '다시 시작하면 돼!'라고 말해줘요.
그래서 계속 모으고 있어요. 아니, 모이고 있어요. (웃음)
연필도 비슷해요. 연필도 사용하는 연필과 보는 연필이 따로 있거든요.
연필에게는 편안함을 얻고 있어요. 사각사각 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죠.
존재 자체로 편안한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공간만 있으면 더 열심히 할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워요.
제대로 수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에요. 집에 뭘 두면 아이들이 끄집어내거든요. (웃음)
높은 곳에 두면 제가 까먹고요. 그래서 눈에 보이도록 사무실에 많이 갖다 두어요.
사용보단 곁에 두려는 목적이니까요.
비어 있는 노트요. 저는 어디론가 여행을 가면 꼭 노트를 많이 사요.
근데 막상 사용할 노트를 따로 사더라고요. (웃음)
그럼 사용하지 않은 노트는 빈 노트로 남는 거죠. 저는 이 비어 있는 노트를 보는 걸 좋아해요.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필름카메라 외에도, 삶의 태도가 묻어나는 물건이 있으시다면요.
빈 노트가 용기를 준다고 느끼시는 군요.
정말 정말 수집가이시네요. (웃음)
편집장님께서는 독자보다 앞에 있는 첫 번째 독자로서,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여러 취향을 봐오셨죠.
다양한 취향을 겪어온 것이 편집장님의 취향을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취향이 다양해지기보단,
내 것을 제대로 바라보고 견고히 만들게 되셨군요.
편집장 김이경이기도 하지만, 엄마 김이경이기도 하시죠.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함께하시던데요. 멋진 엄마세요.
아이가 생기기 전과 후로 삶이 나뉜다고 하죠.
엄마가 된 후에 취향의 변화가 있으셨나요?
올해 유난히 바쁘셨죠. 일도 육아도 돌보는 삶이라,
정작 김이경 님 자신을 돌보기란 어려우셨을 것 같아요.
나를 돌보기 위한 물건이 있으시다면요.
부지런히 누군가의 취향을 세상에 내보이고,
동시에 나만의 취향을 쌓아온 김이경 님의 ‘취향 수집’은
앞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김이경다운 취향을 한마디로 정의해본다면요?
보는 것만으로도 물건의 가치를 느끼시나 봐요.

[어라운드]

“취향이 너무 많아 채워만 왔기에
지금은 비어 있는 것이 좋아요.”
집은 가족 모두의 취향이 함께 공존하잖아요.
이곳만큼은 김이경님 만의 취향이 오롯이 모여 있을 것 같아요.
김이경 님만의 취향의 공간이자, 삶의 현장인 이곳에서
취향수집은 어떻게 사용해 보셨어요?
아무래도 이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실 텐데,
나만의 것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시나요?
취향에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묻어나는 것 같아요.
필름카메라를 사랑하신다고 들었는데,
느림을 지향하고 주변을 살피는 태도가 묻어 있으신 거죠.
가장 사랑하는 필름카메라를 소개해주신다면요.
편집장 김이경
집에도 제 물건이 많지만, 역할이 다른 것 같아요.
업무를 보는 제 공간에는 일할 때 편하고 기분좋게 만들어주는 것들을 모아두었어요.
취향수집이 도착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노트를 넣어보니 딱 맞더라고요.
비워진 노트를 내 이야기로 채워 나갈 생각에 설레하면서 차곡차곡 꽂았어요.
위쪽엔 슬라이드로 뺄 수 있는 선반이 있어서,
책상 위에 널려 있던 물건을 올려 두었더니 깔끔해졌고요.
작지만 내구성도 좋고, 활용도가 높아 오래 두고 사용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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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풀을 보면 편안해지는 사람이에요.
사무실에 들어오려면 무성히 자란 풀을 헤치고 와야 하거든요. (웃음)
좋아하는 풀을 지나 사무실에 들어오는 이 길이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에요.
그리고 업무 외엔 틈틈이 책을 읽어요.
저희가 만드는 책에만 갇혀 있으면 안 되니까,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책은 당장 읽지 않아도 우선 사두는 편인데,
다양하게 꽂아 두곤 읽고 싶은 기분이 드는 순간에 꺼내어 보고 있어요.
     
편집장님의 단어를 모아본다면, ‘사소한 행복’, ‘자연스러움’,
‘느림’, ‘편안함, ‘여유’예요.
이런 삶의 태도는 언제부터 가지게 되신 건가요?
사람들이 저에게 늘 그래요. 여유 있다고.
저는 나름 바쁘게 쫓기고 있는 건데. (웃음)
저는 예민함을 타고났어요.
무언가를 듣거나 봤을 때 감정적으로 깊이 느끼다 보니, 생각이 많아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는 편이에요. 부여잡지 않는 거죠.
한참 생각하다가도, '이만큼 생각했으면 됐어.'하고 놓아버려요.
어려서부터 어떤 것에든 연연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몸이 아플 것 같았거든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자연스럽고 편안히 흘러가도록 두어요.
부족함을 깨닫는 것도 큰 얻음이잖아요.
맞아요. 필름 카메라는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해준 계기라고 할 수 있어요.
같은 길을 가더라도 다른 사람은 지나칠 수 있는 걸 멈춰서 다시 보고, 찍죠.
처음 필름 카메라를 만난 건 대학교 사진 수업 때였어요. ‘Nikon FM2’ 아직도 기억나요.
필름 카메라는 디지털카메라와는 다르게, 찍자마자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가 없잖아요.
나중에 인화한 필름 사진을 보니 제 기억보다 사진이 훨씬 멋지더라고요.
그때부터 빠져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가장 오랜 시간 좋아해 온 취향의 물건이죠.
오래된 물성이라는 그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오래된 것을 좋아하거든요.
어릴 적 할머니 집에 가면 할머니의 오래된 재봉틀을 그렇게 탐냈어요. (웃음)
필름 카메라는 중고밖에 없잖아요. 내가 쓰기 전에 누구의 손을 거쳐 나에게 왔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카메라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래도록 좋아하며 내내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사진을 찍으러 다녔어요.
필름 사진 좋아하는 분들과 전시도 열고 책도 냈었죠.
CONTAX T3요.
유일하게 아직도 자주 사용하는 카메라여서 애정하고 있어요.
환경 변화에 적응을 잘하고, 고장이 잘 나지 않더라고요.
예전에 Leica minilux를 가지고 한겨울 등산을 한 적이 있어요.
영하에 눈이 많이 내리던 날이었는데, 정상에서 카메라를 꺼내니 작동을 안 하더라고요.
환경에 영향을 받는 거죠. 그리고 필름 카메라는 주로 중고거래로 사거나 풍물시장에서 구하는데,
예뻐서 산 것도 많거든요. 근데 그렇게 산 카메라는 고장이 잦더라고요. 수리도 어렵고.

또, 즉석 카메라인 Polaroid사의 SLR690도 애착이 가는 카메라예요.
영화 러브레터에 등장해 유명해진 SX-70을 비롯해 4대 더 소장하고 있어요.
저는 세팅 되어 있어 예상 가능한 사진보단,
Polaroid처럼 우연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사진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 삶과 비슷해요. 저 역시 정해진 대로 사는 것보단 우연에서 비롯된 것을 좋아하거든요.
           
주변에서는 왜 그러느냐고, 사용 좀 하라고 해요. (웃음)
그런데 사용해서
닳아 없어지면, 제가 이 물건을 통해 얻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 같아서
사용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멋진 분들이 많아요. 정말 주옥같죠.
하지만 저의 취향 자체에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아요.
취향을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보단,
자신이 가진 취향을 당당하게 여기고 쌓아가는 태도를 배우고 있어요.
자신의 취향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라운드 80호 (2021년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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